영화의 배경시기를 보면 50,60년대 시기다.
케이트 웬슬릿에 극중 이름조차 에이프런인 엄마가 된 여자에게 엄마다움 강조하고
아이를 위해서는 여자남자 모두 희생된 각자의 인생은 없음을 비단 아이문제만이 아니라
핑계로 작용하고 있지만 남여 각자의 인생에 관한 물음이다.
요즘은 미국사회를 봐도 폐윤리적인 일을 제외하고서는
엄마의 도리에 관한 윤리적인 잣대를 휘젓지 않는다.
(낙태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에이프런에게 남자는 정상적인 엄마라면 상상할 수 없으며 지금의 아이들 사랑하냐고
되묻는다.... 잔인하게 그지 없는 말이였다.)
지금의 현실이기 그렇기 때문이다. 아이때문에이라는 핑계가 적용되지 않는다.
만약 지금의 2010 미국에 사는 에이프런이라면 굳이 남편과 함께 이상을 찾지 않더라도
스스로 벗어나는 길을 택했겠지만 저 당시에 그녀에겐 그만한 용기도 쉽지 않았다는 것이 안타깝다.
조금만 더 있었다면 조금더 길게 볼 수 있었다면... 서로 너무 사랑해서 그 사랑이 발목을 잡아낸다.
그녀의 인생은 본인이 끝내기 전까진 그 누구도 끝낼 수 없는 본인이 인생이였던 건데 말이다.
그녀는 이미 정신적 코마상태에 벼랑끝에 몰린 상태였다.
그녀가 이상은 없음을 알고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굳이 도피처가 파리가 아니였어도 됬어요 라고 말한 대답은
이미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삶을 포기한다는 의미로 들렸다.
그리곤 아무감정없이 셋째를 임신한 상태에서 이웃의 남편과 정사를 나누는 씬에서도 느껴졌다.
아이에 대한 죄책감에 더욱 아이를 지우려는 에이프런이 결국 스스로 결심을 하고 실행하지만
지우고 나서 홀가분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이내 자신이 흘리는 피를 보고서는 겁에 질려 흐느끼며 도움이 청한다.
이렇게 이상과 현실의 간극은 잔인하다.
내가 이 영화를 보고 갑갑함을 느꼈던건...미국의 50,60년대 사회가
현재 2010년 사는 나와 다를바가 없다는 점이다.
지금도 진로에 방황하고 괴로워 하는 사람있고 어떻게든 에이프런처럼
제대로 다시 눈이 반짝이던 생생하게 숨쉬며 살아보고자 하는 의지도 충분히 갖고 있고
결말또한 에이프런같은 결말도 그렇지 않은 결말도 공존하고 있음을 보여주지만
잔인하게 세월의 시간을 보내온 사람들에게 그렇게
잔인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솔직하게 보여주면서도
선택은 관객 본인 몫임을 각성하게 해준다.
그래서 공감조차 나눌 수 없는 지극히 사적인 영화였다는 점.
이 영화를 본 후엔 타인의 삶이 떠올랐는데
이상과 현실이 뒤바뀐 주인공이 본인이 생각해온 이상(사적인일)을 위해 과감히
현실(공적인일)을 버리고 용기를 내는 걸 다시금 곱씹어 보면
지금 현실이 그리 나쁘지 않으니 살펴볼 필요가 있고
보듬어 줄 필요가 있는 값진 삶이라는 걸 알아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케이트 웬슬릿에 극중 이름조차 에이프런인 엄마가 된 여자에게 엄마다움 강조하고
아이를 위해서는 여자남자 모두 희생된 각자의 인생은 없음을 비단 아이문제만이 아니라
핑계로 작용하고 있지만 남여 각자의 인생에 관한 물음이다.
요즘은 미국사회를 봐도 폐윤리적인 일을 제외하고서는
엄마의 도리에 관한 윤리적인 잣대를 휘젓지 않는다.
(낙태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에이프런에게 남자는 정상적인 엄마라면 상상할 수 없으며 지금의 아이들 사랑하냐고
되묻는다.... 잔인하게 그지 없는 말이였다.)
지금의 현실이기 그렇기 때문이다. 아이때문에이라는 핑계가 적용되지 않는다.
만약 지금의 2010 미국에 사는 에이프런이라면 굳이 남편과 함께 이상을 찾지 않더라도
스스로 벗어나는 길을 택했겠지만 저 당시에 그녀에겐 그만한 용기도 쉽지 않았다는 것이 안타깝다.
조금만 더 있었다면 조금더 길게 볼 수 있었다면... 서로 너무 사랑해서 그 사랑이 발목을 잡아낸다.
그녀의 인생은 본인이 끝내기 전까진 그 누구도 끝낼 수 없는 본인이 인생이였던 건데 말이다.
그녀는 이미 정신적 코마상태에 벼랑끝에 몰린 상태였다.
그녀가 이상은 없음을 알고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굳이 도피처가 파리가 아니였어도 됬어요 라고 말한 대답은
이미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삶을 포기한다는 의미로 들렸다.
그리곤 아무감정없이 셋째를 임신한 상태에서 이웃의 남편과 정사를 나누는 씬에서도 느껴졌다.
아이에 대한 죄책감에 더욱 아이를 지우려는 에이프런이 결국 스스로 결심을 하고 실행하지만
지우고 나서 홀가분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이내 자신이 흘리는 피를 보고서는 겁에 질려 흐느끼며 도움이 청한다.
이렇게 이상과 현실의 간극은 잔인하다.
내가 이 영화를 보고 갑갑함을 느꼈던건...미국의 50,60년대 사회가
현재 2010년 사는 나와 다를바가 없다는 점이다.
지금도 진로에 방황하고 괴로워 하는 사람있고 어떻게든 에이프런처럼
제대로 다시 눈이 반짝이던 생생하게 숨쉬며 살아보고자 하는 의지도 충분히 갖고 있고
결말또한 에이프런같은 결말도 그렇지 않은 결말도 공존하고 있음을 보여주지만
잔인하게 세월의 시간을 보내온 사람들에게 그렇게
잔인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솔직하게 보여주면서도
선택은 관객 본인 몫임을 각성하게 해준다.
그래서 공감조차 나눌 수 없는 지극히 사적인 영화였다는 점.
이 영화를 본 후엔 타인의 삶이 떠올랐는데
이상과 현실이 뒤바뀐 주인공이 본인이 생각해온 이상(사적인일)을 위해 과감히
현실(공적인일)을 버리고 용기를 내는 걸 다시금 곱씹어 보면
지금 현실이 그리 나쁘지 않으니 살펴볼 필요가 있고
보듬어 줄 필요가 있는 값진 삶이라는 걸 알아야한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