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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설운 서른

내가 지금 서른인가, 서른 하나인가?
서른에서 하나 더하는게 이리도 빠르지. 
생각할 겨늘도 없이 나이에 점점 둔감해진다. 
다른 사람들의 나이도 계산이 재깍재깍 안될만큼. 

자기도 보내온 설운서른을 잊는 마흔은 마흔으로 서른을 본다.
그래서 서른은 서럽다, 설운 서른.
제목부터 서러운 서른을 울리는 구나.

'서른'이라는 시간에 띄워 보내는 50편의 시

'서른'을 노래한 50인의 시 모음집『설운 서른』. 서른의 방황과 좌절, 그리고 현실을 노래한 시들을 '설운'이라는 주제에 담았다. 고정희, 나희덕, 남진우, 박라연, 송재학, 안도현, 이윤택, 장석주, 천양희, 최승자, 허수경, 황인숙, 황지우 등 국내의 대표 시인들이 참여하였다. 특히 본문을 세로쓰기로 편집하여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서른은 앓을 만큼 앓았기에 살만한 나이이고, 앓고 난 후 일상의 아름다움을 돌아볼 수 있는 나이이다. 이 시집은 이러한 '서른'이라는 시간에 띄워 보내는 50편의 시를 소개한다. 한국영상자료원장 조선희가 쓴 '좋은 나이 마흔'이라는 에세이를 시집에 대한 해제 대신 수록하였다.

이 시집은 이제 거의 자취를 감춘 세로쓰기를 시도하고 있다. 세로쓰기는 시각적인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정독을 하는데 도움을 준다. 시인들이 정성스럽게 써내려간 시어와 문장들을 천천히 음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시집은 세로쓰기를 선택하였다. 세로쓰기 전용 서체를 계발한 '활자공간' 이용제의 꽃길체를 시집 전체에 사용하였다.

이 책에 담긴 시 한 편!

<삼십 세>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시큰거리는 치통 같은 흰 손수건을 내저으며
놀라 부릅뜬 흰자위로 애원하며.

내 꿈은 말이야, 위장에서 암 세포가 싹트고
장가가는 거야, 간장에서 독이 반짝 눈뜬다.
두 눈구멍에 죽음의 붉은 신호등이 켜지고
피는 젤리 손톱은 톱밥 머리칼은 철사
끝없는 광물질의 안개를 뚫고
몸뚱어리 없는 그림자가 나아가고
이제 새로 꿀 꿈이 없는 새들은
추억의 골고다로 날아가 뼈를 묻고
흰 손수건이 떨어뜨려지고
부릅뜬 흰자위가 감긴다.

오 행복행복행복한 항복
기쁘다우리 철판깔았네

1. 서른

설운, 서른

서른은 불안한 나이다. 철없던 이십대의 열정과 더 이상 혹하지 않는다는 사십대의 안정 사이에서, 지나왔던 사랑, 꿈, 일에 대해 돌아보고, 주변인들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그냥 스쳐지나갔던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 가슴에 꽂히고, 언젠가 선물 받았던 잉게보르크 바하만(Ingeborg Bachman)의 「삼십세」를 책장에서 꺼내 펼쳐보기도 한다. 길거리에서 아이와 아내의 손을 잡고 가는 친구를 만나고 돌아서다가, 불쑥 서른이란 나이가 무겁고 두려워지기도 한다.

잠시 멈추는 시간, 서른
서른은 흘러가다 잠시 멈추는 시간이다. 흘러왔던 길을 돌아보고, 흘러갈 길을 내다보는 '시간의 웅덩이'다. 돌아갈 수도, 내쳐 갈 수도 없는, 그래서 설운 시간이다. 서른은 세상의 시간으로 계산된 ' 30年'이라는 물리적 시간만은 아니다. 서른은 스물에도 올 수 있고, 마흔이 넘어서 올 수도 있다. 혹은 평생 찾아오지 않거나, 남들보다 자주 서른을 마주칠 수도 있다.

서른이라는 공감대
김광석의 노래와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삼십세」가 끝없이 불려지고 읽히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서른이란 어떤 보편적인 정서가 있다. 서른을 바라보는, 혹은 서른을 맞이하거나, 서른의 언저리에서 서른을 홀로 앓고 있는 이들에게 정서적 공감대가 필요하다. 서른이라는 시간의 웅덩이에 서둘지 말고 천천히 머물다 가라며 띄우는 시편들과, 방황하지 말고 빨리 흘러가라고 불어주는 시원한 바람같은 시편들을 모았다.

2. 설운? 서른?

'설운'과 '서른'의 음률적인 중첩은 김삿갓(김병연)이 쓴 시에서 비롯되었다. '二十'부터 '七十'까지 언어유희를 써가며 나그네의 서러움을 노래한 시에서 '三十'을 '설운(서러운)'과 '설은'으로 재미있게 묘사했다.

二十樹下三十客 스무(二十)나무 아래 설운(三十) 나그네
四十家中五十食 망할(四十) 놈의 집에서 쉰(五十) 밥을 주는구나
人間豈有七十事 세상에 어찌 이런(七十) 일이 있을손가
不如歸家三十食 내 집에 돌아가 설은(三十) 밥 먹음만 못하리

현대시에는 김종길 시인의 '성탄제(聖誕祭)'에서 서른을 서러운 나이라고 표현했다.

....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것이라곤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 김종길, 「성탄제」 중에서-

서른은 마냥 서러운 나이인가?
그렇지만은 않다. 서른의 방황과 좌절, 그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현실을 담은 시들을 '설운'이란 목록에 모았다. 하지만 서른은 앓을 만큼 앓았기에 이제는 살만한 나이고, 앓고 난 후 일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들을 '서른'이라는 목록에 담았다. 마지막으로 조선희(씨네21편집장, 현 한국영상자료원장)씨의 '좋은 나이 마흔'이라는 에세이로 시집의 해제를 대신했다.

3. 세로쓰기, 느림의 미학

한겨레신문을 필두로 조선일보까지 모든 일간지가 가로쓰기로 바뀐 마당에 왜 하필 다시 세로쓰기인가? 단순히 눈에 한 번 띄어보고자 하는 형식적인 시도인가? 자칫 이념논쟁이 될 법도 하지만, 한글의 서체는 원래 세로쓰기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 한글은 가로쓰기에도 세로쓰기에도 모두 어울리는 아름다운 문자다. 진보나 보수의 이념이 아닌, 미학적인 아름다움이 세로쓰기에는 숨어있다.

물론 속독을 할 때는 가로쓰기가 편하다. '빨리, 빨리'만을 외치는 세상이기에 세로쓰기는 이제 아예 꼬리를 감추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로쓰기는 시각적 아름다운뿐만 아니라 정독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 시인들이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 써내려간 시어와 문장들, 그 사유의 숲길을 음미하며 산책하기 위해서는 속독보다는 정독이 필요하다. 「설운 서른」의 시만큼은 그렇게 느리게 읽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세로쓰기를 시도했다.

그러나 기존 가로쓰기 서체들은 글을 읽는 중심선이 제각각이어서 세로쓰기로 옮길 경우 미적으로 아름답지 못하다. 세로쓰기 전용 서체를 계발한 '활자공간' 이용제 선생님의 꽃길체를 시집 전체에 사용했다.

책속으로

두 눈을 부릅떴지만 사랑은 보이지 않았다 앓을 만큼 앓아야 병이 낫던 시절이었다
-이기선, 「삼십대의 病歷」 중에서-

바람을 만나러 길을 나섰다가 바람 속에서 까마득히 길을 잃었다
-김수열, 「신호등 쓰러진 길 위에서」 중에서-

생각이 몸을 지배할 때까지만 살지 못하고 몸이 생각을 버릴 때까지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
-박라연, 「내 작은 비애」 중에서-

이 세상에 없는 길을 만드는 싸움에 나섰다가 지친 너는, 너는 비록 지쳤으나 승리하지 못했으나 그러나, 지지는 않았지 -안도현, 「모항으로 가는 길」 중에서-

세월은 흩날리지 않았다 세월은 신다 버린 구두 속에서 곤한 잠을 자다